취당 권묵택박사
작성자
대전중구문화원
작성일
2024-05-08
조회
236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에서 권이태(權以太)와 강경순(姜敬順)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일찍이 교육에 뜻을 두어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41년 심상과(尋常科)를 졸업한 직후부터 1945년 8·15 광복이 될 때까지 경기도 장단, 소사 등에서 소학교 훈도(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는 소학교 훈도로 근무하면서 계속 학구열을 불태워 1944년 2월 18일에는 일제하의 전문학교입학자 검정시험에 합격하였다. 광복 후인 1947년 8월 31일에는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수료하고, 곧이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가, 6·25전쟁 중 대전에 자리를 잡아 1951년 5월부터 1956년 5월까지 대전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한편 학업을 계속하여 1956년 3월 28일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1956년 5월부터 1959년 2월까지 충남대학교 법학과 강사를 거쳐 1959년 3월 충남대학교 법학과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은 이래 1986년 8월 29일 만성 신부전증으로 타계할 때까지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매진하였다.
학문연구에 남다른 정열을 보임으로써 수많은 주옥같은 논문과 2권의 저서 및 다수의 공동저서를 집필하여 한국의 형사법학 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1965년 1월부터 한국형사법학회 이사, 상임 이사 및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형사법학회의 운영과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한 법학자로서만이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여, 충남대학교 법경대학장, 경영대학원장, 대학원장 등을 맡아 대학행정에 참여하였는가 하면 한국법학교수회 부회장으로서 우리나라 법학교육의 발전을 위한 노력도 전개하였다.
이처럼 1951년이래 대전에 청착하여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1964년이래 충청남도 지방공무원소청심사위원회 위원, 충청남도 행정연구위원회 위원, 공산문화상(公山文化賞) 운영위원회 위원, 충청남도 교육소청심사위원회 위원등을 역임하면서 지역발전에고 일익을 담당하였다. 후진양성에 대한 그의 공로와 빛나는 업적을 인정받아 1978년 10월 28일 충청남도 문화상 학술부문을, 1982년 12월 5일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1985년 부인과 사별한 후 건강이 악화되어 만성신부전증을 얻었고, 정년을 3년 앞둔 1986년 여름 충남대학교 부속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소학교 훈도로 근무하면서 계속 학구열을 불태워 1944년 2월 18일에는 일제하의 전문학교입학자 검정시험에 합격하였다. 광복 후인 1947년 8월 31일에는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수료하고, 곧이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가, 6·25전쟁 중 대전에 자리를 잡아 1951년 5월부터 1956년 5월까지 대전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한편 학업을 계속하여 1956년 3월 28일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1956년 5월부터 1959년 2월까지 충남대학교 법학과 강사를 거쳐 1959년 3월 충남대학교 법학과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은 이래 1986년 8월 29일 만성 신부전증으로 타계할 때까지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매진하였다.
학문연구에 남다른 정열을 보임으로써 수많은 주옥같은 논문과 2권의 저서 및 다수의 공동저서를 집필하여 한국의 형사법학 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1965년 1월부터 한국형사법학회 이사, 상임 이사 및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형사법학회의 운영과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한 법학자로서만이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여, 충남대학교 법경대학장, 경영대학원장, 대학원장 등을 맡아 대학행정에 참여하였는가 하면 한국법학교수회 부회장으로서 우리나라 법학교육의 발전을 위한 노력도 전개하였다.
이처럼 1951년이래 대전에 청착하여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1964년이래 충청남도 지방공무원소청심사위원회 위원, 충청남도 행정연구위원회 위원, 공산문화상(公山文化賞) 운영위원회 위원, 충청남도 교육소청심사위원회 위원등을 역임하면서 지역발전에고 일익을 담당하였다. 후진양성에 대한 그의 공로와 빛나는 업적을 인정받아 1978년 10월 28일 충청남도 문화상 학술부문을, 1982년 12월 5일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1985년 부인과 사별한 후 건강이 악화되어 만성신부전증을 얻었고, 정년을 3년 앞둔 1986년 여름 충남대학교 부속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