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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임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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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8회 작성일 24-05-0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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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지산(志山)이다. 1931년 10월 7일 경상북도 문경군 산양면 우본리에서 부친 임광숙(林光淑)과 모친 윤인천(尹仁川)의 사이에서 4남으로 출생하였다.

임달규는 1938년 어린 나이에 부친을 따라 문경군 산양면 우본리 고향에서 대전으로 이거하게 되었고,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대전에서 마친 후 1957년 3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였고, 1975년 3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남다른 리더쉽이 있어 재학시절 학생회장으로 대학의 자율적 학술활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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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 후에는 1970년 12월 경희대학교 충남동문회장을 맡아 동문상호간의 유대강화와 모교발전에 기여하였으며, 1959년에는 대전한의사회이사겸 중앙대의원을 역임하고, 1973년에는 충남개방위원회 이사 및 운영위원장을 맡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1974년 3월에는 경희대학교 한의학대학 외래교수가 되고, 1975년에는 대전 로타리클럽 이사를 맡아 사회봉사 활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리고 1981년에는 민족통일 충남협의회 고문을 맡아 조국통일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의 사업중 가장 획기적인 것은 부친이 개설한 혜화당 한의원을 계승하여 인술을 통한 활인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옴으로써 그 명성이 전국에 알려졌으며, 대학설립이라는 큰일을 성취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국가발전의 기반이 인재양성에 있음을 절감하고 오래 전부터 육영사업에 큰 뜻을 지녀 오던중, 1980년 10월 마침내 혜화학원(惠和學園) 설립인가를 받아 1980년 12월 국가발전·문화창조·사회봉사를 건학이념으로 하는 대전대학을 설립하고 1981년 3월 대전대학을 개교하였다.


대학설립을 위하여 인술을 통하여 평생모은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하고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교지 142,500평과 기타 재산 21억 3천만원을 흔쾌히 출연하였다.

이렇게 큰일을 함에는 남다른 봉사정신과 투철한 교육이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큰일을 성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들어내고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대학의 설립자이면서도 스스로를 원장이라 호칭케 하고 이사장의 자리를 형인 임홍규에게 맡기고 뒤에서 학교발전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고, 발전계획을 세우는데 정력을 기울였다. 특히 대학이 개교된 후에도 한의학과 개설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1981년 10월 한의학과의 개설이 승인되자 1982년 3월 대전시 은행동에 소재하는 5층 건물을 출연하여 대전대학교 부속 한방병원을 개설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본격적인 대학병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부속병원을 만들기 위하여 대전시 대흥동 22-5에 소재하는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건물(지하 1층, 지상 8층)을 인수하여 부속한방병원을 만들어 놓기까지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어린시절 가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학교를 다녔기에, 어려웠던 지난날을 생각하여 대학 설립 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전대 학생에게 장학혜택을 주기 위하여 지산(志山)장학회를 설립하고, 3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혜택을 주었다.


과로로 인한 발병으로 1988년 10월 9일 별세하여 유해는 고향인 문경군 산양면 우본리 선영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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