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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김창균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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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9회 작성일 24-05-0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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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김창균선생은 5월 21일에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면에서 출생하였다. 본적은 대전시 문창동 55번지이다. 일찍이 어려서부터 역사나 지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평양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자 1925년에 경성제대의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1929년 3월 31일에 경성제대 사학과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1937년 6월 12일에 조선총독부의 편수관으로 임명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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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942년에 충남 대덕군수로 부임하였으며, 한국인의 징용문제로 상부와 격돌하여 청양군수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청양군수로 재직하고 있던 도중에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그 후 관직을 떠나 야인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이 고장에 충남대학교가 개교되면서 1952년 5월 31일 문리대학의 사학과 주임교수로 부임하여 대학교육의 발전에도 공헌한 바 있다.


그는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동양사와 중국의 최근세사 등을 강의하였으며, 300여명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틈틈히 충청남도 공무원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많은 교양 강연을 통해 지역 사회의 발전에도 나름대로 공헌한 바 있다.


이러한 교육계와 지역 사회에 이바지한 업적으로 그는 1964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1968년 9월 30일에 16년간 재직하였던 충남대학교를 정년 퇴직하였으며, 그 후에도 시간강사로 출강하면서 후학의 지도에 전념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김창균은 경성시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일찍이 관계에 투신하여 행정가의 길을 걷기도 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교육계로 전직하면서 후학과 제자의 지도와 육성에 이바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혈압으로 졸도하여 1970년 5월 18일 대전시 석교동 자택에서 6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가족으로는 부인 조영선 여사와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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