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이전
  • 다음다음
  • [제26집]은행동이야기
  • 문창동 서정 엿장수놀이
  • 서정엿장수 놀이.jpg
    • 관련사진
  • 제4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영예의 금상을 받은 문창동 서정 엿장수 놀이

    개관 및 유래
    대전의 민속은 현대산업사회의 전형적인 도시문화와 그 외곽지역의 농촌문화가 공존하는 상황속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광역시 숭격이후 빠른 도시화 현상으로 전통문화의 급격한 소멸과 변형을 가져온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 엿장수놀이는 국문헉자 지헌영선생이 생존시 고중에 의하면 대전 서정말에는 황금엿이 만들어졌으며 서정말에 사는 황가라는 사람과 김가라는 사람이 엿도가를 경영하면서 비록되었다.
    엿장수들을 거느리고 살던 황가와 김가는 매년 정월이 되면 실컷먹고 놀게하여 주었고 엿장수들은 이러한 주인이 고마워서 서로 주인에게 잘하려고 충성심을 발휘하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문이나자 전국에 있는 엿장수들이 서정말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서정(西町)은 엿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엿장수들도 주인을 따라 둘로 갈라져서 경쟁상대가 되었고 서정엿이라고 불리던 엿도 황가네엿, 김가네엿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후 두집은 서로 화해하고 김가네, 황가네의 성을 따서 "황금엿"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서정 엿장수 놀이의 기원이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서정 엿기술자들은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엿을 만들었고, 지금도 일본 대판(오사카), 구주(구마모토)에서는 조선엿이 판매되고 있다.

    현재에도 엿장수(도부꾼)로 활동했던 김근수(75세), 고증인 최장수(82세), 김기태(73세) 등이 생존해 있으며 이 놀이는 1930년-40년대까지 전해졌다. 지금도 문창동(서정)에는 주민들에 의해서 엿도가를 재현하고 있다.

    놀이의 구성

    ※ 첫째마당 - 장날
    서정 장날은 3일과 8일에 열리며 곡식과 생필품의 물물교환의 장소로 마을과 마을 사이에 인간관계를 형성시켜주는 교량의 역할도 하였다.
    장에는 황가네, 김가네엿집, 싸전, 포목전, 죽기전, 닭전 등으로 재현되었다. 서정장은 중부지방에서 제일 큰 장으로 회덕, 옥천, 금산, 논산 등지에서도 장을 보러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 둘째마당 - 놀이판

    마을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고, 북적거리는 장터에서 사당패들의 신명나는 풍장과 함께 땅제주(살판)의 놀이판이 벌어지고 장을 보러나온 장꾼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어서 버나돌리기와 12발 상모돌리기와 갖은 제주를 부리며 장날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장을 보러 나온 장꾼들과 상인들은 사당패의 제주와 흥이 곁들여 각자 나름대로 보답으로 곡식이나 돈을 내어 놓는다.

    ※ 셋째마당 - 다툼의 마당
    황가네와 김가네 엿집에서는 서로 엿을 팔기 위해 흥정을 하고 호객행위를 해서 장꾼들을 불러 모은다. 이러는 과정에서 두 엿도가가 시비가 되어 싸움이 벌어진다.
    두 엿도가에서는 호객행위로 싸움이 일어나자 서로 양보하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화해를 한다.

    ※ 넷째마당 - 엿치기

    엿을 가지고 하는 놀이로 장날 따라 나온 어린아이들은 엿을 사먹고, 장꾼들은 군데군데 모여 엿장수가 늘어놓은 엿판에서 엿을 골라 부러트려 구멍이 제일 큰쪽이 이기는 놀이다. 황기네, 김가네 엿도가에서는 엿치기 내기를 해서 지는 쪽이 엿 한판을 새겨주기로 하고 엿치기를 한다.

    ※ 다섯째마당 - 엿불림
    김가네 엿도가에서 엿불림타령을 잘하고 잘노는 도부꾼이 각각 나와 걸판지게 놀고 이에 양 엿도가에 도부꾼들이 흥에 겨워 모두 나와 같이 어우러진다. 장꾼들도 흥에 겨워 같이 춤을 추고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