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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집]은행동이야기
  • 창계숭절사
  • 숭절사 전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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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동의 창명정이 마을에 있는 고풍스런 창계숭절사(滄溪嵩節祠) 

     

    1923년에 세워진 이 창계승절사(문화재 자료 제2호)는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충정공(忠貞公) 박팽년(朴彭年, 1417∼1456)과, 사육신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함께 복위운동을 도모했던 충정공(忠正公) 청재(淸齋) 박심문(朴審問, ?∼1456), 이 두 분의 위패 (位牌)를 모신 사당(祠堂)이다.

    박팽년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세종 17년(1434) 문과에 급제한 후 단종 2년(1453)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으며 세조 1년(1455)에는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는 중 발각되어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심문 선생 역시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세종 18년(1436)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함길도 절도사인 김종서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큰 공을 세웠으며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성삼문 등 사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주(魏州)에서 음독 순절한 절신(節臣)이다.

    원래 정절서원(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박팽년 선생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祭享)을 받들어 놨으나, 고종 8년(1871)에 서원이 헐려, 지금 있는 곳에 다시 사당을 세우고 두 분을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여기서 창계는 유등천을 달리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