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내 보싸움 놀이
작성자
대전중구문화원
작성일
2024-05-08
조회
45
"버드내두레" 가 있어 1966년과 1997년 에 시행한 대전광역시 민속경연대회에 각각 출현한 바 있는 데, 먼저 보싸움 놀이에 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보(洑 )한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시냇물에 둑을 쌓고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저수지나 방죽과 같이 물길을 완전히 차단해서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일부는 수로(水路0를 길게 내어 논으로 물을 대주는 것이 보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여컨대 보는 우리민족이 무론 어떻게 활용했으며, 또 물에 얽힌 여러 문제들을 어떻데 극복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슬기와 재치가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는 농경의 역사와 그 시원(始原)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나 하 면 물이야말로 농경에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중기 이앙법의 보급 및 두레노동의 확산과 함께 보는 수도작 농경에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방편으로서 폭 넓게 조성되었다.
따라서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마을이면 어디서나 보가 만들어졌지만, 큰 시냇가를 끼고 있는마을에서는 더욱 보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시냇물에 여러 마을이 의존해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버드내가 자리한 유등천 주변에도 여러 개의 보가 만들어져 드넓은 한밭 벌을 비옥한 곡창지대로 바꾸어 주었다.
버드내 보싸움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유등천 주변만 해도 안영동 아들바위 밑에 자리한 성산보,버드내 주민들의 젖줄인 원대보(물문보), 안영리 후보, 복수보, 도마보, 용두보 등이 자리해서 과거 이 지역이 벼농사를 위주로 한 곡창지대였음을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버드내 보싸움놀이는 결국 농경에 필수조건이 ㄴ보의 축조와 그것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민속놀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보싸움놀이가 언제부터 유래한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벼농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치수(治水)의 문제는 우리민족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고대 논경사회 아래 떼려야 뗄 수 없는불가분이 관계에 있는 까닭이다.
아무튼 유구한 시간을 두고 전승되어 온 버드내 보 싸움놀이는1960년대 이후 유등천 주변의 경각지가 대부분 시가지로 탈바꿈하면서 소멸되고 말았다.
https://www.djjunggu.go.kr/tour/sub03_04_04.do
그러나 저수지나 방죽과 같이 물길을 완전히 차단해서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일부는 수로(水路0를 길게 내어 논으로 물을 대주는 것이 보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여컨대 보는 우리민족이 무론 어떻게 활용했으며, 또 물에 얽힌 여러 문제들을 어떻데 극복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슬기와 재치가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는 농경의 역사와 그 시원(始原)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나 하 면 물이야말로 농경에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중기 이앙법의 보급 및 두레노동의 확산과 함께 보는 수도작 농경에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방편으로서 폭 넓게 조성되었다.
따라서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마을이면 어디서나 보가 만들어졌지만, 큰 시냇가를 끼고 있는마을에서는 더욱 보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시냇물에 여러 마을이 의존해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버드내가 자리한 유등천 주변에도 여러 개의 보가 만들어져 드넓은 한밭 벌을 비옥한 곡창지대로 바꾸어 주었다.
버드내 보싸움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유등천 주변만 해도 안영동 아들바위 밑에 자리한 성산보,버드내 주민들의 젖줄인 원대보(물문보), 안영리 후보, 복수보, 도마보, 용두보 등이 자리해서 과거 이 지역이 벼농사를 위주로 한 곡창지대였음을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버드내 보싸움놀이는 결국 농경에 필수조건이 ㄴ보의 축조와 그것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민속놀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보싸움놀이가 언제부터 유래한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벼농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치수(治水)의 문제는 우리민족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고대 논경사회 아래 떼려야 뗄 수 없는불가분이 관계에 있는 까닭이다.
아무튼 유구한 시간을 두고 전승되어 온 버드내 보 싸움놀이는1960년대 이후 유등천 주변의 경각지가 대부분 시가지로 탈바꿈하면서 소멸되고 말았다.
https://www.djjunggu.go.kr/tour/sub03_04_04.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