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김재권선생
작성자
대전중구문화원
작성일
2024-05-08
조회
42
교육자 김재권선생은 1904년 11월 8일 출생하였다. 원적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학리 129번지(현재 서울시 강남구 학동 129번지)이며 주거지는 중구 선화동 84번지이다.
김재권은 1928년에 경성 제2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방직과에 입학하여 1931년에 졸업하였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해부터 1934년까지 3년여동안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염직부(전 국립공업연구소 염직과) 촉탁으로 근무하다 1935년부터 3년간 평안남도 산업과 기수, 1938년부터 2년간 함경남도 산업과 기수를 역임하였다.

1940년 천일공업사를 자영해 오다가 1945년 광복 후 서울공업고등학교 교사, 방직과주임을 역임하는 한편, 194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강사 및 중등공업교원양성소 강사로 고등교육에 있어서의 공업기술교육에 헌신하였다.
6·25전쟁 후 1952년부터는 안양공업고등학교 교감으로 부임하여 초창기의 공업교육행정에 참여하여 우리나라 공업교육발전에 기여하였다. 1957년 개교5년째를 맞이하는 초창기의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섬유공학과 교수로서 이 고장 대전과 인연을 맺기를 시작하였다.
1958년 조교수 및 부교수를 거쳐, 1960년 교수로 임명되어 1972년 정년 퇴임을 하였다.
충남대학교 재직 15년 동안 강의하는 한편 1960년부터 2년간 섬유공학과 주임교수, 1963년부터 4년간 충남대학교 부속도서관장으로 초창기의 충남대학교를 확장하여 도약기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72년 2월 정년퇴임에 앞서 8·15광복부터 대학에 발을 디디어 방적분야를 연구한 20년 세월을 결산하는 『면방적(綿紡績)』을 출간하였다.
이 저서는 자신이 대학에서 연구나 강의를 하면서 국내 발간의 참고서적이 부족하여 많은 불편을 느꼈고, 또한 학생들이나 방적공장의 실무자들이 참고서적의 빈곤으로 공부하는데나 실무에 종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통감하여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그동안 대학에서 강의한 교재를 토대로 외국서적과 국내서적을 망라하고 새로 진보 개량된 사실과 당시 마련된 문교부 제정 기술용어를 참작하여 총정리한 것이다. 60년대 중반의 노구로 정열을 쏟은 역저로 당시의 학계와 업계에서 높이 평가된 바 있다.
1985년 12월 31일 타계하였으며, 묘소는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 수강리 선영하에 있다.
김재권은 1928년에 경성 제2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방직과에 입학하여 1931년에 졸업하였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해부터 1934년까지 3년여동안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염직부(전 국립공업연구소 염직과) 촉탁으로 근무하다 1935년부터 3년간 평안남도 산업과 기수, 1938년부터 2년간 함경남도 산업과 기수를 역임하였다.

1940년 천일공업사를 자영해 오다가 1945년 광복 후 서울공업고등학교 교사, 방직과주임을 역임하는 한편, 194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강사 및 중등공업교원양성소 강사로 고등교육에 있어서의 공업기술교육에 헌신하였다.
6·25전쟁 후 1952년부터는 안양공업고등학교 교감으로 부임하여 초창기의 공업교육행정에 참여하여 우리나라 공업교육발전에 기여하였다. 1957년 개교5년째를 맞이하는 초창기의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섬유공학과 교수로서 이 고장 대전과 인연을 맺기를 시작하였다.
1958년 조교수 및 부교수를 거쳐, 1960년 교수로 임명되어 1972년 정년 퇴임을 하였다.
충남대학교 재직 15년 동안 강의하는 한편 1960년부터 2년간 섬유공학과 주임교수, 1963년부터 4년간 충남대학교 부속도서관장으로 초창기의 충남대학교를 확장하여 도약기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72년 2월 정년퇴임에 앞서 8·15광복부터 대학에 발을 디디어 방적분야를 연구한 20년 세월을 결산하는 『면방적(綿紡績)』을 출간하였다.
이 저서는 자신이 대학에서 연구나 강의를 하면서 국내 발간의 참고서적이 부족하여 많은 불편을 느꼈고, 또한 학생들이나 방적공장의 실무자들이 참고서적의 빈곤으로 공부하는데나 실무에 종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통감하여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그동안 대학에서 강의한 교재를 토대로 외국서적과 국내서적을 망라하고 새로 진보 개량된 사실과 당시 마련된 문교부 제정 기술용어를 참작하여 총정리한 것이다. 60년대 중반의 노구로 정열을 쏟은 역저로 당시의 학계와 업계에서 높이 평가된 바 있다.
1985년 12월 31일 타계하였으며, 묘소는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 수강리 선영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