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권순기선생
작성자
대전중구문화원
작성일
2024-05-08
조회
49
학자 권순기선생은 황해도 평산군 용산면 광암리에서 부친 권혁명(權赫命)의 3형제 중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43년 6월 수원 공립농림중학교에 입학하여 6년간 수학하였으며 1949년 졸업하였다
그해 9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하였다. 4년동안 축산학을 전공하였으며, 1953년 9월에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981년 10월 20일 일본 동경농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를 졸업하던 1953년 10월에 대림산업주식회사에 입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회사에서 1955년 12월까지 2년여 기간 동안 근무하였다. 그리고 1956년 1월 1일부터 1959년 4월 7일까지 축산 시험장에서 근무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59년 4월 8일에 지금의 경상대학교 농과대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진주 농대에서 교육자 및 학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진주 농대에서 1962년 3월 6일까지 근무하였으며, 그 후 동아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옮겨 이 대학에서 1963년 11월 5일까지 근무하면서 강의한 바 있다. 이어서 1963년 11월 6일에 충남대학교 농과대학에 부임하여 이 지역의 교육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충남대학교에서 1987년 10월 22일까지 25년 까지이 재직하면서 학문연구에 열중하는 한편 학교의 발전에도 적지않게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1974년 5월 25일에는 충남대학교에서 10년 근속표창을, 1984년 5월 26일에는 20년 근속표창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사료작물학(飼料作物學)』, 『사료작물(飼料作物)』, 『가축사양학(家畜飼養學)』등의 저서를 발표하여 이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도 나름대로 커다란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1987년 10월 22일에 59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끝으로 별세하였다. 가족으로는 부인 고령 신씨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묘소는 대전시 동구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원에 있다.
그해 9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하였다. 4년동안 축산학을 전공하였으며, 1953년 9월에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981년 10월 20일 일본 동경농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를 졸업하던 1953년 10월에 대림산업주식회사에 입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회사에서 1955년 12월까지 2년여 기간 동안 근무하였다. 그리고 1956년 1월 1일부터 1959년 4월 7일까지 축산 시험장에서 근무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59년 4월 8일에 지금의 경상대학교 농과대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진주 농대에서 교육자 및 학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진주 농대에서 1962년 3월 6일까지 근무하였으며, 그 후 동아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옮겨 이 대학에서 1963년 11월 5일까지 근무하면서 강의한 바 있다. 이어서 1963년 11월 6일에 충남대학교 농과대학에 부임하여 이 지역의 교육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충남대학교에서 1987년 10월 22일까지 25년 까지이 재직하면서 학문연구에 열중하는 한편 학교의 발전에도 적지않게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1974년 5월 25일에는 충남대학교에서 10년 근속표창을, 1984년 5월 26일에는 20년 근속표창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사료작물학(飼料作物學)』, 『사료작물(飼料作物)』, 『가축사양학(家畜飼養學)』등의 저서를 발표하여 이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도 나름대로 커다란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1987년 10월 22일에 59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끝으로 별세하였다. 가족으로는 부인 고령 신씨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묘소는 대전시 동구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