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칠석놀이
작성자
대전중구문화원
작성일
2024-05-08
조회
32
이 부사칠석놀이(연출 : 정인삼)는 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 연대회에서 대전광역시 중구대표로 출전하여 영예의 대통령 상을 수상한 민속놀이이다.
백제시대 이 마을에는 윗말과 아랫말의 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두 마을은 사이가 나빠 항상 갈등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윗말에는 부용이라는 처녀가, 아랫말에는 사득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윗말과 아랫말 사이에 있는 부사샘으로 물을 길러 다니다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이후 산라가 백제를 침략하자 사득이는 백제군으로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부용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사득이를 그리워하였다.
그러나 사득은 전쟁터에서 죽고 돌아오지 않았다.
상심한 부용은 날로 몸이 야위어 갔다. 그리고 날마다 사득이가 돌아오는가 싶어 뒷산(보문산)선바위에 올라가서 멀리 길을 바라다 보았다. 그러다가 그만 선바위에서 실족하여 떨어져 죽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가뭄이 들어 샘물까지 말라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샘물을 길러 멀리 황새샘까지 가야만 했는데 이는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윗말에 사는 어느 노인의 꿈에 부용이 나타나서 자기와 사득의 영혼 결혼을 성사시켜주면 물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아랫말에 사는 노인의 꿈에는 사득이 나타나 부용이 윗말 노인에게 했던 것처럼 말하였다.
윗말 아랫말 사람들은 사흘 뒤인 칠석날에 샘을 깨끗히 청소하고 고사를 지냈다.
아울러 부용과 사득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그후, 말랐던 샘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이 샘을 부용과 사득의 첫 이름자를 따서 부사샘이라 명명하였다.
마을 이름 또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뒤 매년 칠석날이면 선바위에서 부용신에게 제사를 올려왔다.
또한 부사샘을 깨끗히 청소하고, 고사를 지낼뿐만 아니라 부용과 사득의 합궁놀이를 하였다.
이것이 유래가되어 오늘날 부사동에서는 부사칠석놀이를 매년 행하고 있다.
백제시대 이 마을에는 윗말과 아랫말의 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두 마을은 사이가 나빠 항상 갈등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윗말에는 부용이라는 처녀가, 아랫말에는 사득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윗말과 아랫말 사이에 있는 부사샘으로 물을 길러 다니다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이후 산라가 백제를 침략하자 사득이는 백제군으로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부용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사득이를 그리워하였다.
그러나 사득은 전쟁터에서 죽고 돌아오지 않았다.
상심한 부용은 날로 몸이 야위어 갔다. 그리고 날마다 사득이가 돌아오는가 싶어 뒷산(보문산)선바위에 올라가서 멀리 길을 바라다 보았다. 그러다가 그만 선바위에서 실족하여 떨어져 죽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가뭄이 들어 샘물까지 말라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샘물을 길러 멀리 황새샘까지 가야만 했는데 이는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윗말에 사는 어느 노인의 꿈에 부용이 나타나서 자기와 사득의 영혼 결혼을 성사시켜주면 물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아랫말에 사는 노인의 꿈에는 사득이 나타나 부용이 윗말 노인에게 했던 것처럼 말하였다.
윗말 아랫말 사람들은 사흘 뒤인 칠석날에 샘을 깨끗히 청소하고 고사를 지냈다.
아울러 부용과 사득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그후, 말랐던 샘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이 샘을 부용과 사득의 첫 이름자를 따서 부사샘이라 명명하였다.
마을 이름 또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뒤 매년 칠석날이면 선바위에서 부용신에게 제사를 올려왔다.
또한 부사샘을 깨끗히 청소하고, 고사를 지낼뿐만 아니라 부용과 사득의 합궁놀이를 하였다.
이것이 유래가되어 오늘날 부사동에서는 부사칠석놀이를 매년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