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동 엿장수놀이
작성자
대전중구문화원
작성일
2024-05-08
조회
33
문창동 엿장수 놀이는 조선 중엽 서정말(西町) 남쪽에 살 던 황씨와 북쪽에 살던 김씨의 엿도가 경영으로부터 유래되 었다. 이들은 경쟁적 관계로 다툼이 자주 있었다
※ 서정 엿장수 놀이(2003년 10월 15일-17일 강원도 동해시 망강오토켐핑리조트 경연장)
※ - 고증 : 한상수(대전대명예교수), 조성남(중구문화원장)
※ - 기획 : 최두지, 문무공
※ - 연출 : 정인삼
※ - 조연출 : 박현우
대전의 민속은 현대산업사회의 전형적인 도시문화와 그 외곽지역의 농촌문화가 공존하는 상황속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광역시 숭격이후 빠른 도시화 현상으로 전통문화의 급격한 소멸과 변형을 가져온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 엿장수놀이는 국문헉자 지헌영선생이 생존시 고중에 의하면 대전 서정말에는 황금엿이 만들어졌으며 서정말에 사는 황가라는 사람과 김가라는 사람이 엿도가를 경영하면서 비록되었다.
엿장수들을 거느리고 살던 황가와 김가는 매년 정월이 되면 실컷먹고 놀게하여 주었고 엿장수들은 이러한 주인이 고마워서 서로 주인에게 잘하려고 충성심을 발휘하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문이나자 전국에 있는 엿장수들이 서정말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서정(西町)은 엿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엿장수들도 주인을 따라 둘로 갈라져서 경쟁상대가 되었고 서정엿이라고 불리던 엿도 황가네엿, 김가네엿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후 두집은 서로 화해하고 김가네, 황가네의 성을 따서 "황금엿"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서정 엿장수 놀이의 기원이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서정 엿기술자들은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엿을 만들었고, 지금도 일본 대판(오사카), 구주(구마모토)에서는 조선엿이 판매되고 있다.

현재에도 엿장수(도부꾼)로 활동했던 김근수(75세), 고증인 최장수(82세), 김기태(73세) 등이 생존해 있으며 이 놀이는 1930년-40년대까지 전해졌다. 지금도 문창동(서정)에는 주민들에 의해서 엿도가를 재현하고 있다.
※ 첫째마당 - 장날
서정 장날은 3일과 8일에 열리며 곡식과 생필품의 물물교환의 장소로 마을과 마을 사이에 인간관계를 형성시켜주는 교량의 역할도 하였다.
장에는 황가네, 김가네엿집, 싸전, 포목전, 죽기전, 닭전 등으로 재현되었다. 서정장은 중부지방에서 제일 큰 장으로 회덕, 옥천, 금산, 논산 등지에서도 장을 보러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 둘째마당 - 놀이판
마을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고, 북적거리는 장터에서 사당패들의 신명나는 풍장과 함께 땅제주(살판)의 놀이판이 벌어지고 장을 보러나온 장꾼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어서 버나돌리기와 12발 상모돌리기와 갖은 제주를 부리며 장날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장을 보러 나온 장꾼들과 상인들은 사당패의 제주와 흥이 곁들여 각자 나름대로 보답으로 곡식이나 돈을 내어 놓는다.
※ 셋째마당 - 다툼의 마당
황가네와 김가네 엿집에서는 서로 엿을 팔기 위해 흥정을 하고 호객행위를 해서 장꾼들을 불러 모은다. 이러는 과정에서 두 엿도가가 시비가 되어 싸움이 벌어진다.
두 엿도가에서는 호객행위로 싸움이 일어나자 서로 양보하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화해를 한다.
※ 넷째마당 - 엿치기
엿을 가지고 하는 놀이로 장날 따라 나온 어린아이들은 엿을 사먹고, 장꾼들은 군데군데 모여 엿장수가 늘어놓은 엿판에서 엿을 골라 부러트려 구멍이 제일 큰쪽이 이기는 놀이다. 황기네, 김가네 엿도가에서는 엿치기 내기를 해서 지는 쪽이 엿 한판을 새겨주기로 하고 엿치기를 한다.
※ 다섯째마당 - 엿불림
김가네 엿도가에서 엿불림타령을 잘하고 잘노는 도부꾼이 각각 나와 걸판지게 놀고 이에 양 엿도가에 도부꾼들이 흥에 겨워 모두 나와 같이 어우러진다. 장꾼들도 흥에 겨워 같이 춤을 추고 논다.
<< 엿불림(엿타령) >>
자, 서정엿장수가 왔습니다.
자 숟가락 몽댕이 부러진 것
비녀꼭지 떨어진 것
미친여자 속곳 떨어진 것
고무신짝 떨어진 것
부부싸움 하다가 깨어진 놋요강
삼대 사대 쓰다가 으그러진 놋그릇
머리 빗어 뭉쳐 놓은 것
무엇이나 가지고 오면
한짐씩 쥐어주는 서정엿
나 니나니 나나나
나낫 니나이 나나나
촌양반 허벅지 주머니
구리백전이 살살 나온다
이리 오시오 이리와
어디를 가면 거져를 주나
말만 잘하면 막퍼준 엿
이리 오시오 이리와
이리 오라면 이리와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이리 오시오 이리와
걸찍 걸찍 파는 엿
둥굴 둥굴 파는 엿
제주도라 귤감 엿
경상도라 좁쌀 엿
전라도라 생강 엿
충청도라 고구마 엿
강원도라 강냉이 엿인디
울릉도는 호박 엿
황해도 봉산에 박하 엿
해주 명산에 찹쌀 엿
어서 오시오 어서와
어서 오라면 어서와
빛깔 좋다 황금 엿
일본 대판에 조선 엿
어디를 가면 거져를 주나
말만 잘하면 막퍼준 엿
둥굴 둥굴 파는 엿
걸찍 걸찍 파는 엿
함열 운산의 찹쌀 엿
전주 봉상의 생강 엿
둥기 둥기 찹쌀 엿
떡벌어졌구나 나팔 엿
허리가 잘쑥 장구 엿
울긋불긋 대추 엿
시컴시컴 수수 엿
둥굴 둥굴 파는 엿
나 니나니 나나나
나낫 니나이 나나나
어서 오시오 어서와
어서 오라면 어서와
아주매 고우시면
말만 잘해도 거져주고
늙으신 할머니도
정이 들면 거져를 주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어서 오시오 어서와
어디를 가면 거져주나
파장 할머니 막걸리 팔 듯
순대집 큰애기 빈자를 팔 듯
섣달 큰애기 개밥 퍼주 듯
싸구려로 막 파는 엿
얼시구나 절시구 지화자
지화자가 좋을시구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이리 오시오 이리와
신랑 각시 첫날밤에
오줌누다가 구멍난 것
영감 할멈 싸우다가
삼베 속곳 찢어진 것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잘 잘도 나간다
어디를 가면 거져를 주나
말만 잘하면 막 퍼준 엿
이리 오시오 이리와
이리 오라면 이리와
나 니나니 나나나
나낫 니나이 나나나
이리 오시오 이리와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얼얼시구나 절시구 지화자
그런 가운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황씨가 죽게 되었고, 이후 김씨가 죽은 황씨를 가려 매년 정월 보름달 거리제를 지내주었다.
그러면서 두 가문이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아울러 이날을 줄다리기 등의 놀이가 향유되기도 하였다.
놀이의 구성을 소개하면 먼저 정월 초사흗날에 엿장수들은 제주를 선정한다.
제사일이 다가오면 양쪽집의 제주가 모여 거리제의 제반 집행에 대해 상의하고 준비를 한다.
놀이의 첫 번째 단계는 길놀이이다.
정월 대 보름날 일정한 시간에 유사인 마을 좌상은 알았다는 응답으로 징을 3번 쳐서 화답한다.
그러면 두 마을의 엿장수들이 각기 기를 앞세우고 거래제장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제장에 나와 두 기를 마주 세운 뒤 기세배를 올린다.
이어 거리제를 올린다.
엿장수들은 사거리 중앙에 돗자리를 펴고 제상을 놓은 뒤 제물을 진설한다.
제의는 유고식 기제사형식으로 진행된다.
분향 강신을 하고 좌상이 초헌을 하고 삼배를 하는 수능으로 진행된다.
소지는 제주가 올리는데 소망하는 바를 좌중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를 내어 축원한다.
보통 첫째 소지는 엿도가 덕대를 위해서 올리고,둘째 소지는 두 마을의 좌상을 위해서 올린다. 셋째 소지는 엿장수들이 일년 동안 무병하고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올린다.
이렇게 세 장의 소지를 올린 다음 특별히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위해 울린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날의 대표와 국태민안을 위해 올린다. 거리제가 끝나면 헌식이라 하여 제물을 제장 주변에 뿌린다. 그리고 제물을 나누어 먹는 음복이 행해진다.
제를 지낸 후,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이 줄다리기에서 이기면 이긴 편의 엿은 일년 동안잘 팔리고 진편은 그렇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 마을은 상의 끝에 무승부를 약속하고 경기에 임한다.
양쪽 마을에서 만든 줄을 가지고 나와 제상이 있던 자리에 연결해 좋고 줄목에는 마을 기를 꽂아 놓는다. 중앙에 있는 두 사람의 심판관이 동시에 징을 치면 경기가 시작된다.
좌상은 사령기로 지휘하고 군중은 함성을 지르며 풍물을 친다. 경기도중 잠시 쉬는 시간도 있다.
이때 두 편은 약속이나 한 듯 「쾌지나 칭칭나네」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전의를 북돋운다.
다시 줄을 당기고 그러다가는 다시 쉬면서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세 번 반복한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이긴 편이 아녀자들이 진 편에 대해 야유를 한다.
그러면 이때 진편에서 기습적으로 줄을 당긴다. 이 불시의 기습에 이긴 편은 못이기는 척하고 줄을 놓아준다.
줄의 중앙이 애초에 시작했던 것과 동일한 장소에 놓이게 된다.
결국 무승부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두 마을 사람들은 모두「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어우러져 무승부를 자축한다.
경기가 끝나면 뒤풀이가 이러진다. 좌상이 가위치기를 하면 앞장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따라나선다. 대열에서 엿타령이 나오면 사이사이에 가위치기를 하여 흥을 돋운다.
그러면 대열의 아무나가 익살을 떨면서 엿타령을 화답하나다.
다시 가위치기로 전체가 하나가 죄어 장내를 돌며 신나게 놀이를 전개한다.
이어 풍물패가 등장하여 신명을 한껏 일구어 놓는다.
그리고는 이들 풍물패가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을 이끌고 놀이판에서 퇴장하면 놀이가 마감된다.
※ 서정 엿장수 놀이(2003년 10월 15일-17일 강원도 동해시 망강오토켐핑리조트 경연장)
※ - 고증 : 한상수(대전대명예교수), 조성남(중구문화원장)
※ - 기획 : 최두지, 문무공
※ - 연출 : 정인삼
※ - 조연출 : 박현우
대전의 민속은 현대산업사회의 전형적인 도시문화와 그 외곽지역의 농촌문화가 공존하는 상황속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광역시 숭격이후 빠른 도시화 현상으로 전통문화의 급격한 소멸과 변형을 가져온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 엿장수놀이는 국문헉자 지헌영선생이 생존시 고중에 의하면 대전 서정말에는 황금엿이 만들어졌으며 서정말에 사는 황가라는 사람과 김가라는 사람이 엿도가를 경영하면서 비록되었다.
엿장수들을 거느리고 살던 황가와 김가는 매년 정월이 되면 실컷먹고 놀게하여 주었고 엿장수들은 이러한 주인이 고마워서 서로 주인에게 잘하려고 충성심을 발휘하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문이나자 전국에 있는 엿장수들이 서정말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서정(西町)은 엿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엿장수들도 주인을 따라 둘로 갈라져서 경쟁상대가 되었고 서정엿이라고 불리던 엿도 황가네엿, 김가네엿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후 두집은 서로 화해하고 김가네, 황가네의 성을 따서 "황금엿"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서정 엿장수 놀이의 기원이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서정 엿기술자들은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엿을 만들었고, 지금도 일본 대판(오사카), 구주(구마모토)에서는 조선엿이 판매되고 있다.

현재에도 엿장수(도부꾼)로 활동했던 김근수(75세), 고증인 최장수(82세), 김기태(73세) 등이 생존해 있으며 이 놀이는 1930년-40년대까지 전해졌다. 지금도 문창동(서정)에는 주민들에 의해서 엿도가를 재현하고 있다.
※ 첫째마당 - 장날
서정 장날은 3일과 8일에 열리며 곡식과 생필품의 물물교환의 장소로 마을과 마을 사이에 인간관계를 형성시켜주는 교량의 역할도 하였다.
장에는 황가네, 김가네엿집, 싸전, 포목전, 죽기전, 닭전 등으로 재현되었다. 서정장은 중부지방에서 제일 큰 장으로 회덕, 옥천, 금산, 논산 등지에서도 장을 보러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 둘째마당 - 놀이판
마을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고, 북적거리는 장터에서 사당패들의 신명나는 풍장과 함께 땅제주(살판)의 놀이판이 벌어지고 장을 보러나온 장꾼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어서 버나돌리기와 12발 상모돌리기와 갖은 제주를 부리며 장날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장을 보러 나온 장꾼들과 상인들은 사당패의 제주와 흥이 곁들여 각자 나름대로 보답으로 곡식이나 돈을 내어 놓는다.
※ 셋째마당 - 다툼의 마당
황가네와 김가네 엿집에서는 서로 엿을 팔기 위해 흥정을 하고 호객행위를 해서 장꾼들을 불러 모은다. 이러는 과정에서 두 엿도가가 시비가 되어 싸움이 벌어진다.
두 엿도가에서는 호객행위로 싸움이 일어나자 서로 양보하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화해를 한다.
※ 넷째마당 - 엿치기
엿을 가지고 하는 놀이로 장날 따라 나온 어린아이들은 엿을 사먹고, 장꾼들은 군데군데 모여 엿장수가 늘어놓은 엿판에서 엿을 골라 부러트려 구멍이 제일 큰쪽이 이기는 놀이다. 황기네, 김가네 엿도가에서는 엿치기 내기를 해서 지는 쪽이 엿 한판을 새겨주기로 하고 엿치기를 한다.
※ 다섯째마당 - 엿불림
김가네 엿도가에서 엿불림타령을 잘하고 잘노는 도부꾼이 각각 나와 걸판지게 놀고 이에 양 엿도가에 도부꾼들이 흥에 겨워 모두 나와 같이 어우러진다. 장꾼들도 흥에 겨워 같이 춤을 추고 논다.
<< 엿불림(엿타령) >>
자, 서정엿장수가 왔습니다.
자 숟가락 몽댕이 부러진 것
비녀꼭지 떨어진 것
미친여자 속곳 떨어진 것
고무신짝 떨어진 것
부부싸움 하다가 깨어진 놋요강
삼대 사대 쓰다가 으그러진 놋그릇
머리 빗어 뭉쳐 놓은 것
무엇이나 가지고 오면
한짐씩 쥐어주는 서정엿
나 니나니 나나나
나낫 니나이 나나나
촌양반 허벅지 주머니
구리백전이 살살 나온다
이리 오시오 이리와
어디를 가면 거져를 주나
말만 잘하면 막퍼준 엿
이리 오시오 이리와
이리 오라면 이리와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이리 오시오 이리와
걸찍 걸찍 파는 엿
둥굴 둥굴 파는 엿
제주도라 귤감 엿
경상도라 좁쌀 엿
전라도라 생강 엿
충청도라 고구마 엿
강원도라 강냉이 엿인디
울릉도는 호박 엿
황해도 봉산에 박하 엿
해주 명산에 찹쌀 엿
어서 오시오 어서와
어서 오라면 어서와
빛깔 좋다 황금 엿
일본 대판에 조선 엿
어디를 가면 거져를 주나
말만 잘하면 막퍼준 엿
둥굴 둥굴 파는 엿
걸찍 걸찍 파는 엿
함열 운산의 찹쌀 엿
전주 봉상의 생강 엿
둥기 둥기 찹쌀 엿
떡벌어졌구나 나팔 엿
허리가 잘쑥 장구 엿
울긋불긋 대추 엿
시컴시컴 수수 엿
둥굴 둥굴 파는 엿
나 니나니 나나나
나낫 니나이 나나나
어서 오시오 어서와
어서 오라면 어서와
아주매 고우시면
말만 잘해도 거져주고
늙으신 할머니도
정이 들면 거져를 주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어서 오시오 어서와
어디를 가면 거져주나
파장 할머니 막걸리 팔 듯
순대집 큰애기 빈자를 팔 듯
섣달 큰애기 개밥 퍼주 듯
싸구려로 막 파는 엿
얼시구나 절시구 지화자
지화자가 좋을시구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이리 오시오 이리와
신랑 각시 첫날밤에
오줌누다가 구멍난 것
영감 할멈 싸우다가
삼베 속곳 찢어진 것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잘 잘도 나간다
어디를 가면 거져를 주나
말만 잘하면 막 퍼준 엿
이리 오시오 이리와
이리 오라면 이리와
나 니나니 나나나
나낫 니나이 나나나
이리 오시오 이리와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얼얼시구나 절시구 지화자
그런 가운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황씨가 죽게 되었고, 이후 김씨가 죽은 황씨를 가려 매년 정월 보름달 거리제를 지내주었다.
그러면서 두 가문이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아울러 이날을 줄다리기 등의 놀이가 향유되기도 하였다.
놀이의 구성을 소개하면 먼저 정월 초사흗날에 엿장수들은 제주를 선정한다.
제사일이 다가오면 양쪽집의 제주가 모여 거리제의 제반 집행에 대해 상의하고 준비를 한다.
놀이의 첫 번째 단계는 길놀이이다.
정월 대 보름날 일정한 시간에 유사인 마을 좌상은 알았다는 응답으로 징을 3번 쳐서 화답한다.
그러면 두 마을의 엿장수들이 각기 기를 앞세우고 거래제장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제장에 나와 두 기를 마주 세운 뒤 기세배를 올린다.
이어 거리제를 올린다.
엿장수들은 사거리 중앙에 돗자리를 펴고 제상을 놓은 뒤 제물을 진설한다.
제의는 유고식 기제사형식으로 진행된다.
분향 강신을 하고 좌상이 초헌을 하고 삼배를 하는 수능으로 진행된다.
소지는 제주가 올리는데 소망하는 바를 좌중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를 내어 축원한다.
보통 첫째 소지는 엿도가 덕대를 위해서 올리고,둘째 소지는 두 마을의 좌상을 위해서 올린다. 셋째 소지는 엿장수들이 일년 동안 무병하고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올린다.
이렇게 세 장의 소지를 올린 다음 특별히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위해 울린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날의 대표와 국태민안을 위해 올린다. 거리제가 끝나면 헌식이라 하여 제물을 제장 주변에 뿌린다. 그리고 제물을 나누어 먹는 음복이 행해진다.
제를 지낸 후,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이 줄다리기에서 이기면 이긴 편의 엿은 일년 동안잘 팔리고 진편은 그렇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 마을은 상의 끝에 무승부를 약속하고 경기에 임한다.
양쪽 마을에서 만든 줄을 가지고 나와 제상이 있던 자리에 연결해 좋고 줄목에는 마을 기를 꽂아 놓는다. 중앙에 있는 두 사람의 심판관이 동시에 징을 치면 경기가 시작된다.
좌상은 사령기로 지휘하고 군중은 함성을 지르며 풍물을 친다. 경기도중 잠시 쉬는 시간도 있다.
이때 두 편은 약속이나 한 듯 「쾌지나 칭칭나네」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전의를 북돋운다.
다시 줄을 당기고 그러다가는 다시 쉬면서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세 번 반복한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이긴 편이 아녀자들이 진 편에 대해 야유를 한다.
그러면 이때 진편에서 기습적으로 줄을 당긴다. 이 불시의 기습에 이긴 편은 못이기는 척하고 줄을 놓아준다.
줄의 중앙이 애초에 시작했던 것과 동일한 장소에 놓이게 된다.
결국 무승부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두 마을 사람들은 모두「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어우러져 무승부를 자축한다.
경기가 끝나면 뒤풀이가 이러진다. 좌상이 가위치기를 하면 앞장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따라나선다. 대열에서 엿타령이 나오면 사이사이에 가위치기를 하여 흥을 돋운다.
그러면 대열의 아무나가 익살을 떨면서 엿타령을 화답하나다.
다시 가위치기로 전체가 하나가 죄어 장내를 돌며 신나게 놀이를 전개한다.
이어 풍물패가 등장하여 신명을 한껏 일구어 놓는다.
그리고는 이들 풍물패가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을 이끌고 놀이판에서 퇴장하면 놀이가 마감된다.